기계가 수집한 도시의 낯선 ‘표면’들
채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1. 기록성과 수행성 사이에서
정지현은 한국의 도시건축에 깃든 전형적인 서사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사진 작업을 전개해 왔다. 신도시와 뉴타운 건설현장에서 미완의 공간에 감도는 기묘한 미감을 포착한 <Construction Site>(2008~2012), 철거공사가 진행 중인 오래된 아파트 속으로 들어가 방마다 새빨간 페인트를 칠한 <Demolition Site>(2013~), 건물 외벽이 철거되면서 ‘빨간 방’이 점차 선명하게 노출되는 과정을 담은 <Reconstruction Site>(2015~) 연작을 통해 도시공간의 변천이 빚어내는 날선 풍경을 원경 및 클로즈업 사진으로 선보여 왔다.
일련의 사진 작업은 건축물에 깃든 당대의 이상이 철거와 재건축을 거치며 점차 해체되고 소멸되는 장면을 사실적으로 담아냈다는 점에서 기록적 성격을 갖는 동시에, 출입이 통제된 재건축 및 철거현장에 작가의 신체가 개입되며 공간에 물리적 변화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수행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
2. ‘표면’의 인식과 공간의 실재성
작가는 최근 KT&G상상마당 개인전에서 <CONSTRUCT> 연작을 대거 선보였다. 2018년 6월 서울 용산에 준공된 아모레퍼시픽 본사 건축현장에 상주하며 외벽 마감이 마무리되기 직전인 상태의 벽면 곳곳에 렌즈를 들이댄 것이다. 수많은 내장재가 겹쳐져 구성된 벽체의 표면, 즉 외벽 사이로 은근슬쩍 드러난 틈새 공간에 외벽과 대비되는 재질의 자재 자투리를 둥글게 휜 모양으로 끼우거나, 외벽을 만들고 남은 자재 조각을 뒤집어서 얹는 식으로 재료의 앞면과 뒷면을 동시에 보여주며 벽면을 구성하는 각 층의 단면을 가시화했다.
<CONSTRUCT> 연작은 건축공간의 보이지 않는 ‘속살’을 선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전작 <Reconstruction Site>는 물론 재건축 현장에 남겨진 폐자재의 물성을 클로즈업하여 보여준 <Contruction Site Dreg>(2012)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하다. 다만 <Reconstruction Site>가 건물의 철거를 통해 오래된 공간의 내외부가 전복되는 상황이 도시풍경의 거시적 맥락을 건드린다면, <CONSTRUCT>의 경우는 새로운 공간이 완성되기 직전에 드러난 횡단면을 클로즈업 하며 공간의 ‘표면’에 대한 감각을 재고하고 있다. 작가는 이를 두고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공간의 실재성에 대한 지각능력을 회복하고 싶다”고 표현한다.
그런가 하면, 서로 다른 자재가 맞닿은 자리를 극단적으로 클로즈업하고, 여러 개의 백색조명을 근거리에서 쏘아 면과 면 사이에 그림자를 생성하여 공간감을 흐리게 하고 마치 하나의 평면인 것처럼 연출한 사진도 있다.
작가는 이렇게 구성한 이미지를 출력하는 매체에 대한 고민도 깊었던 듯하다. <CONSTRUCT>의 다른 작품은 모두 피그먼트 프린트로 출력했는데, 평면적 연출이 유독 두드러지는 두 점의 사진은 유리에 UV 프린트로 출력하여 선보였다. 유리 특유의 매끈한 질감 아래로 비치는 이미지는 3차원 공간을 찍은 사진인데도 마치 그래픽 이미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3. 디지털 이미지의 재조합과 출력재료의 실험
닮은 듯 조금씩 다른 결로 진행되는 <Construction Site> <Reconstruction Site> <CONSTRUCT> 연작이지만 그 안에서 공통적으로 연결되는 정지현 사진 작업의 주된 특징 중 하나는 철저한 사전계획을 바탕으로 한 수행성, 즉 작가의 신체적 개입이 바탕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작가는 최근 이러한 성격과 꽤나 상반된 계열의 일종의 ‘스핀 오프(spin off)’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일례로 일본의 도시풍경을 랜덤하게 ‘수집’하여 편집한 포토 아카이브 <TRANSIT>(2015~) 시리즈가 있다. 2015년 도쿄 원더사이트 레지던시에 체류했던 약 3개월여 동안 거의 매일 무인전철 ‘유리카모메’를 이용하며 차창 너머로 스치는 바깥의 풍경을 중형 디지털 카메라의 자동촬영 기능을 이용해 수없이 촬영한 것이다. 이렇게 촬영한 사진이 총 5만여 컷에 달한다.
움직이는 전차 안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보니 흔들린 사진이 대다수인데, 행인의 옆얼굴, 전차 근처의 건물과 자연의 모습이 스치듯이 담겼다. 작가는 이렇게 모은 사진 중 일부를 편집하여 2개의 벽면에 프로젝션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이 장면을 재촬영하여 사진으로 인화하여 선보였다. 어떤 원칙도 없이 사진을 모았을 때 의미 있는 결과물을 빚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실험이자 이미지의 합성이라는 ‘후가공’에 무게를 둔 새로운 작업 방식이다.
작가는 이 실험을 바탕으로 하여 2018년 한국의 도시풍경을 대상으로 한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서울시의 커미션 프로젝트로 진행된 <우이신설 문화예술철도>(2018)가 바로 그것이다. 지하철 우이역 주변을 오가며 대량으로 촬영한 ‘랜덤사진’에는 인근 북한산에 오르려 등산채비를 하고 나온 이들이 가장 많이 담겼다. ‘산’과 ‘등산객’의 이미지를 테마로 추출하고 두 개의 이미지 레이어를 제작했다. 먼저 이들이 착용한 색색의 등산복 이미지를 클로즈업해 여러 개의 면으로 만들어 이를 연달아 접붙인 형태의 추상적 이미지 레이어 1개 층을 만들었다. 그리고 우이역 방면에서 바라본 북한산의 광경을 촬영하고 이 사진을 확대한 이미지를 픽셀화시켜 또 하나의 추상적인 이미지 레이어 1개 층을 만들었다. 두 개의 다른 이미지 층을 3차원 공간에서 교차시키는 방편으로 미러 필름 프린팅을 선택했다. 투명한 막 위에 출력된 2개의 레이어는 우이역 출입구의 유리벽에 서로를 마주보는 형태로 설치되어 관객이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이미지의 겹침의 양상이 다르게 보인다.
정지현은 이렇게 디지털 이미지의 재조합과 출력재료의 실험을 통해 변화하는 도시의 건축적 공간을 가장 동시대적으로 재현하는 사진적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다. 특히 그의 최근 고민은 현실의 대상을 포착한 디지털 이미지를 다시 현실에 출력하는 새로운 방법에 대한 것들이다. 작가는 조만간 재건축 현장에서 촬영한 폐자재의 오브제를 데이터화하여 3D 프린팅으로 출력하는 실험을 계획하고 있다. 건축적 풍경의 재구성이라는 테마를 더 이상 평면이 아닌 설치적인 방식으로 보여주기에 대한 정지현의 실험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 것인지, 계속해서 지켜보아야 할 듯하다.
채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1. 기록성과 수행성 사이에서
정지현은 한국의 도시건축에 깃든 전형적인 서사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사진 작업을 전개해 왔다. 신도시와 뉴타운 건설현장에서 미완의 공간에 감도는 기묘한 미감을 포착한 <Construction Site>(2008~2012), 철거공사가 진행 중인 오래된 아파트 속으로 들어가 방마다 새빨간 페인트를 칠한 <Demolition Site>(2013~), 건물 외벽이 철거되면서 ‘빨간 방’이 점차 선명하게 노출되는 과정을 담은 <Reconstruction Site>(2015~) 연작을 통해 도시공간의 변천이 빚어내는 날선 풍경을 원경 및 클로즈업 사진으로 선보여 왔다.
일련의 사진 작업은 건축물에 깃든 당대의 이상이 철거와 재건축을 거치며 점차 해체되고 소멸되는 장면을 사실적으로 담아냈다는 점에서 기록적 성격을 갖는 동시에, 출입이 통제된 재건축 및 철거현장에 작가의 신체가 개입되며 공간에 물리적 변화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수행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
2. ‘표면’의 인식과 공간의 실재성
작가는 최근 KT&G상상마당 개인전에서 <CONSTRUCT> 연작을 대거 선보였다. 2018년 6월 서울 용산에 준공된 아모레퍼시픽 본사 건축현장에 상주하며 외벽 마감이 마무리되기 직전인 상태의 벽면 곳곳에 렌즈를 들이댄 것이다. 수많은 내장재가 겹쳐져 구성된 벽체의 표면, 즉 외벽 사이로 은근슬쩍 드러난 틈새 공간에 외벽과 대비되는 재질의 자재 자투리를 둥글게 휜 모양으로 끼우거나, 외벽을 만들고 남은 자재 조각을 뒤집어서 얹는 식으로 재료의 앞면과 뒷면을 동시에 보여주며 벽면을 구성하는 각 층의 단면을 가시화했다.
<CONSTRUCT> 연작은 건축공간의 보이지 않는 ‘속살’을 선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전작 <Reconstruction Site>는 물론 재건축 현장에 남겨진 폐자재의 물성을 클로즈업하여 보여준 <Contruction Site Dreg>(2012)의 연장선상에 있는 듯하다. 다만 <Reconstruction Site>가 건물의 철거를 통해 오래된 공간의 내외부가 전복되는 상황이 도시풍경의 거시적 맥락을 건드린다면, <CONSTRUCT>의 경우는 새로운 공간이 완성되기 직전에 드러난 횡단면을 클로즈업 하며 공간의 ‘표면’에 대한 감각을 재고하고 있다. 작가는 이를 두고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공간의 실재성에 대한 지각능력을 회복하고 싶다”고 표현한다.
그런가 하면, 서로 다른 자재가 맞닿은 자리를 극단적으로 클로즈업하고, 여러 개의 백색조명을 근거리에서 쏘아 면과 면 사이에 그림자를 생성하여 공간감을 흐리게 하고 마치 하나의 평면인 것처럼 연출한 사진도 있다.
작가는 이렇게 구성한 이미지를 출력하는 매체에 대한 고민도 깊었던 듯하다. <CONSTRUCT>의 다른 작품은 모두 피그먼트 프린트로 출력했는데, 평면적 연출이 유독 두드러지는 두 점의 사진은 유리에 UV 프린트로 출력하여 선보였다. 유리 특유의 매끈한 질감 아래로 비치는 이미지는 3차원 공간을 찍은 사진인데도 마치 그래픽 이미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3. 디지털 이미지의 재조합과 출력재료의 실험
닮은 듯 조금씩 다른 결로 진행되는 <Construction Site> <Reconstruction Site> <CONSTRUCT> 연작이지만 그 안에서 공통적으로 연결되는 정지현 사진 작업의 주된 특징 중 하나는 철저한 사전계획을 바탕으로 한 수행성, 즉 작가의 신체적 개입이 바탕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작가는 최근 이러한 성격과 꽤나 상반된 계열의 일종의 ‘스핀 오프(spin off)’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일례로 일본의 도시풍경을 랜덤하게 ‘수집’하여 편집한 포토 아카이브 <TRANSIT>(2015~) 시리즈가 있다. 2015년 도쿄 원더사이트 레지던시에 체류했던 약 3개월여 동안 거의 매일 무인전철 ‘유리카모메’를 이용하며 차창 너머로 스치는 바깥의 풍경을 중형 디지털 카메라의 자동촬영 기능을 이용해 수없이 촬영한 것이다. 이렇게 촬영한 사진이 총 5만여 컷에 달한다.
움직이는 전차 안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보니 흔들린 사진이 대다수인데, 행인의 옆얼굴, 전차 근처의 건물과 자연의 모습이 스치듯이 담겼다. 작가는 이렇게 모은 사진 중 일부를 편집하여 2개의 벽면에 프로젝션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이 장면을 재촬영하여 사진으로 인화하여 선보였다. 어떤 원칙도 없이 사진을 모았을 때 의미 있는 결과물을 빚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실험이자 이미지의 합성이라는 ‘후가공’에 무게를 둔 새로운 작업 방식이다.
작가는 이 실험을 바탕으로 하여 2018년 한국의 도시풍경을 대상으로 한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서울시의 커미션 프로젝트로 진행된 <우이신설 문화예술철도>(2018)가 바로 그것이다. 지하철 우이역 주변을 오가며 대량으로 촬영한 ‘랜덤사진’에는 인근 북한산에 오르려 등산채비를 하고 나온 이들이 가장 많이 담겼다. ‘산’과 ‘등산객’의 이미지를 테마로 추출하고 두 개의 이미지 레이어를 제작했다. 먼저 이들이 착용한 색색의 등산복 이미지를 클로즈업해 여러 개의 면으로 만들어 이를 연달아 접붙인 형태의 추상적 이미지 레이어 1개 층을 만들었다. 그리고 우이역 방면에서 바라본 북한산의 광경을 촬영하고 이 사진을 확대한 이미지를 픽셀화시켜 또 하나의 추상적인 이미지 레이어 1개 층을 만들었다. 두 개의 다른 이미지 층을 3차원 공간에서 교차시키는 방편으로 미러 필름 프린팅을 선택했다. 투명한 막 위에 출력된 2개의 레이어는 우이역 출입구의 유리벽에 서로를 마주보는 형태로 설치되어 관객이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이미지의 겹침의 양상이 다르게 보인다.
정지현은 이렇게 디지털 이미지의 재조합과 출력재료의 실험을 통해 변화하는 도시의 건축적 공간을 가장 동시대적으로 재현하는 사진적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다. 특히 그의 최근 고민은 현실의 대상을 포착한 디지털 이미지를 다시 현실에 출력하는 새로운 방법에 대한 것들이다. 작가는 조만간 재건축 현장에서 촬영한 폐자재의 오브제를 데이터화하여 3D 프린팅으로 출력하는 실험을 계획하고 있다. 건축적 풍경의 재구성이라는 테마를 더 이상 평면이 아닌 설치적인 방식으로 보여주기에 대한 정지현의 실험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 것인지, 계속해서 지켜보아야 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