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hyun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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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현의 사진
존재하지 않는 공동체에 대하여                            

이사빈(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사라져 가는 존재들에 애착을 느끼는 것은 사진가의 본능적 감수성이다. 그 사라져 가는 존재가 사회상의 중요한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라면 여기에는 역사기록적 당위성까지 더해진다. 폐허의 장면은 그 자체로 스펙터클의 미학, 파괴와 상실의 내러티브, 죽음과 허무의 감성을 모두 함축하는 매혹적인 소재이다. 그러니 재개발, 재건축 현장은 한국의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진가가 한번쯤 다루지 않을 수 없는 매력적인 주제인 것이다.

1983년생인 정지현은 재건축이라는 소재를 다루는 예술에도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음을 보여주는 작가들 중 한 명이다. 소위 아파트 키드라고 분류되는 이 세대의 작가들은 아파트라는 공동주거 형태, 그리고 도시라는 시스템을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환경으로 인식하며 성장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다양한 경제적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제각기 다른 삶의 양식으로 공존했던 골목의 시대를 경험한 6-70년대 생들과는 출발점부터 다르다. 따라서 근대화/도시화 과정 자체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근저에 깔고 계급 문제에 대한 고발의 메시지나 개별성, 고유성에 대한 향수의 정서를 동반하는 기존의 작업과는 사뭇 다른 양상들이 나타난다. 이 새로운 세대에게 유년시절의 무대는 골목이 아니라 단지였으며, 단지라는 새로운 거주 단위의 가장 큰 특징은 안전성이다. 경제적으로 비슷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여 살기 때문에 보장되는 안전성. 따라서 그 안정성이 위협을 받거나 파괴되는 순간, 그들은 두 발이 디디고 서 있던 땅, 이전에는 그 존재를 의식조차 하지 못했던 땅이 흔들리는 듯한 충격을 경험하며 이를 바탕으로 어떤 예술적 세계관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정지현의 작업이 전개되는 과정을 짚어나가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잠실 주공 아파트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그는 중학교 때 혼자 지하철을 타면서부터 단지라는 안전지대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가 고등학교 시절에 제작한 습작은 이중촬영기법으로 서울 시내의 전통 건축물과 현대적 건축물을 겹쳐서 한 화면에 담은 연작이다. 이 연작에 대해 작가는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도시 속에 여러 시간이 공존하는 것처럼 느꼈던 경험을 토대로 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시간이라는 추상적인 말로 표현되지만, 그가 아마도 타고 다녔을 지하철 2호선의 노선도를 떠올려 보면, 그래서 강남, 잠실, 성수, 강변 등의 역명을 열거해 보면, 이는 곧 자본이 투입되는 순서를 의미하는 시간임을 알 수 있다. 같은 도시 안에서도 자본이 있는 곳에는 현재의 시간이, 자본이 없는 곳에는 과거의 시간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자본이 없는 것보다는 자본이 있는 것이, 과거보다는 현재를 살 수 있는 것이 언제나 옳다. 이 믿음에 대해 회의를 품거나, 나아가 계급문제에 대한 성찰로 연결시키는 것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의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재건축을 소재로 한 예술에서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 개인과 고유성과 개별적 기억에 대한 오마주가 사라진 자리에서 어떤 유의미한 메시지를 찾는 것은 가능한, 혹은 (굳이) 필요한 일인가?

정지현이 본격적으로 아파트와 관련된 작업을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이다. 잠실 재건축으로 견고해 보이던 세계가 순식간에 소멸하는 과정을 목격한 충격은 자연스럽게 아파트라는 건축물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회현동, 아현동 등 서울 시내 곳곳을 다니며 촬영한 <아파트Apartment>(2005-2006)시리즈는 현재는 사라지고 없는 건축물들, 그 당시에도 곧 철거될 위기에 놓여 있었던 낡은 아파트들을 마치 죽기 전 영정사진처럼 기념비적 정면상으로 기록한 작업이다.

판교, 김포 등 제 2기 신도시가 건설되는 2000년대 후반부터 정지현은 본격적으로 신도시 아파트의 건설현장을 촬영하기 시작한다. <공사현장Construction Site> 연작(2008-2012)에서 도시라는 주제를 다루는 작가의 작업태도는 한 층 구체화된다. 작가는 이 작업에 대해 야생에서 도시가 탄생하는 순간을 다뤄보고 싶었다고 말하지만, 사진은 외부의 건축 현장보다는 곧 주거 공간으로 변모하기 직전의 상태인 아파트 내부 공간에 집중하고 있다. 콘크리트 벽체들과 추상적 형태의 건축 구조물로 가득한, 그러나 아직은 구체적으로 그 용도를 파악할 수 없는 모호한 공간을 따뜻하고 부드러운 자연광이 감싸고 있다. 작가가 공사가 진행되지 않는 주말 낮 시간을 골라 홀로 건물의 내부를 탐색한 시간들의 고요한 적막감이 화면에 그대로 드러난다. 용도를 알 수 없는 건축 자재들이 다소 부자연스러운 위치에 배치되어 있어 그 공간의 질서에 작가가 잠시 개입했음을 암시한다. 세계의 붕괴를 목격함으로써 얻게 된 불안정성에 대한 인식은 그 세계의 토대를 이루는 구조에 대한 탐색과 이해의 과정으로 한 걸음 나아간다.   

이렇게 작가가 집이라는 공간의 물리적 실체를 면면히 탐색하고 파악해 나가는 과정은 우리가 아프기 전까지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자신의 몸 속을 처음으로 내시경을 통해 들여다보는 경험을 연상시킨다. 이런 저런 내장의 위치나 기능을 새삼 확인하면서 지금껏 그것의 생김새나 구조에 대해서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잘도 살아왔다고 느끼는 그런 경험 말이다. 이 작업을 하면서 작가는 그 어떤 외장 재료도 덧입혀지기 전, 즉 콘크리트 상태가 전부인 짧은 기간을 공략했는데, 이는 다른 부가적인 요소들을 모두 배제하고 뼈대만을 통해 이 세계의 구조를 이해해 보고 싶다는 의지와 관련된다. 현장에 있던 건축 자재를 본래의 맥락과 용도로부터 살짝 빗겨가는 방식으로 배치함으로써 그는 이 새로운 발견을 기념하고 기록한다.

반면, 이 시리즈의 직후에 시작되었지만, 재건축이라는 과정에서는 오히려 그 전 단계에 속하는 <철거 현장Demolition Site>(2013)에서는 전혀 다른 감성이 화면을 지배한다. 이 작업은 작가가 철거 중인 건물에 직접 들어가 임의로 선택한 내부 공간을 붉은색 페인트로 칠한 후, 다시 밖으로 나와 철거 진행과정을 지켜보다가 붉은 색의 내부가 일시적으로 드러나는 순간들을 촬영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재건축이라는 주제, 건물의 내부 구조에 대한 관심, 그리고 그 구조를 드러내기 위한 작가의 개입까지 개념적으로는 <공사현장>과 크게 다를 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연작은 훨씬 더 극적이고 강렬한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생성보다는 소멸의 이야기가 언제나 더 자극적인 법이며 피와 살을 연상시키는 붉은 색의 상징성도 여기에 가세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작가의 개입이 훨씬 더 적극적인 이유에서 실행되었다는 점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그는 우리의 눈 앞에 한 장의 사진으로 제시된 폐허가 어떤 재난 영화에나 나올 법한 비현실적 풍경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 전까지도 살아오던 구체적인 공간이라는 사실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이러한 자신의 발견을 개념적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이해를 넘어서 공감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이 시리즈에는 엿보인다. <건설현장>에서는 소극적이었던 ‘개입’이 여기에서는 ‘발언’의 성격을 띠기 시작한다.

한편 2015년에 시작된 시리즈 <재건축 현장Reconstruction Site>은 작가의 관심사가 확장되는 방향을 좀더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 시리즈는 개포 주공아파트의 재건축 현장을 다룬다. 여기에도 붉은 색 페인트를 칠하는 개입이 이루어지지만 이번에는 개별적인 하나의 주거 공간이 아니라 ‘동’이라는 단위로 불리는 아파트 한 채가 기본 단위가 된다. 예컨대 208동이라는 선명한 숫자가 측면 외벽에 보이는 5층짜리 아파트 한 채가 등장하는 사진을 보면, 작가가 2층에 위치한 모든 세대의 내부 공간에 붉은 색을 칠했음을 알 수 있다. 철거 과정에서 각 세대를 구분 짓던 벽들이 허물어지면 분리되어 있던 빨간 면들이 서로 연결되어 긴 띠가 되었다가, 한 쪽에서부터 건물이 붕괴됨에 따라 점점 짧아지고 결국 소멸하는 것이다. 이 빨간 면들의 확장과 결합, 소멸의 과정이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재건축이라는 복잡다단한 사회 현상 속에서 우리의 삶에 대한 일말의 진실이 드러나는 찰나의 순간을 지시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아파트라는 공간은 묘하다. 동일한 크기와 구조를 지닌 하나의 건물로 탄생하지만, 여기에 사람이 입주하는 순간 각 세대의 개별성이 최대한 존중되고 강조된다. (서로 완전히 다른 형태의 집들이 공존했던 골목길 시절에 오히려 이웃끼리 더 가깝게 지냈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기이한 일이다.) 하나의 건물로 탄생한 아파트는 수십 개의 개별적인 집으로 분할된 채 수십 년을 존재하다가 그 수명을 다해 재건축을 논의하는 단계에 들어서면 다시 하나의 건물이 되는 것이다. 빨간 면들이 연결되어 빨간 띠가 되는 순간은 각자의 삶을 살던 주민들이 경제적 이익 실현이라는 공동의 목적을 위해 재건축 조합이라는 이름의 공동체로 하나가 되는 순간에 대한 작가의 메타포인 것이다.

재건축을 소재로 한 예술에서 사회구조에 대한 비판, 개인과 고유성과 개별적 기억에 대한 오마주가 사라진 자리에서 단순한 현상의 재현을 넘어서는 어떤 유의미한 메시지를 찾는 것은 가능한, 혹은 필요한 일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여전히 모르겠다. 다만 불현듯, 어쩌면 정지현은 무심해 보이는 표면 아래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매우 냉소적인 발언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찾는 진정한 공동체는 정작 삶이 영위되는 순간이 아니라 그 직전과 직후에만 존재하는 것이라고. 즉 과거에 대한 향수와 미래에 대한 꿈 속에서만 가능하며, 따라서 비판과 성찰의 대상이 될 만한 현재, 현실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