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ihyun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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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 Jihyun J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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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의 이름을 부르기                  
함영준 (일민미술관 책임 큐레이터)


정지현은 주로 부서지는 건물을 찍는 사진가다. 다시 말해, 건물이 부서지는 순간을 목격하는 것이 정지현의 일이다. 목격한 장면을 사진에 담으면, 그 뒤에는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목격한 장면을 어떻게 찍을 것인지도 물론 고민해야 한다. 그러한 충동, 즉 찍어서 남기고자 하는 사진가적 충동 안에는 여러가지 복잡한 작가의 사정이 있다. 그러나 작가의 개인적 사정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알아보아야 할 것이 있다. 작가가 카메라를 갖다 놓는, 셔터를 누르려는 충동이 발생하는 대상, 건물이 부서지고 있는 한국적인 상황 말이다.

지금도 진행중이긴 하지만 재개발 열풍이 꽤 오랫동안 한국을 휩쓸었던 적이 있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반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구도심을 보기좋게 정리하면서 동시에 주택난을 해소한다는 명목이었지만, 잘 알다시피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파트를 사고 팔며 남기는 시세 차익의 달콤함을 기대하며 개미떼처럼 재건축에 몰려 들었다. 광풍 같은 단어로 묘사되던 그런 사업들은 2000년대 중반 서울의 여러 곳에서 동시에 벌어졌다. 단지 작은 건물 하나를 부수는 일이 아니라, 육안으로는 전부 파악하기 힘든 규모로, 구름 위에서 내려다 보며 선을 긋는 방식의 조금은 모던한 도시 설계 사업이었다. 다시 말해, 서울이라는 도시는 정책을 입안하는 정부와 공사에 뛰어드는 대기업 몇몇에게는 납작한 한 장의 지도에 불과했다.

거기에 실제로 살던 사람은 어땠을까? 그들은 주로 ‘원주민’이라는 야릇한 뉘앙스로 불렸다. 자기가 살던 다소 낡은 동네에 새 아파트를 지어준다는 유혹은 몇 단계의 레이어가 있었는데, 결국 앞서 말했던 시장 경제의 논리 같은 것을 엉겁결에 익히고 나면 (그런 것이 있다면) 좀 더 나은 생활을 꿈꾸며 집이 있던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여기에 자신이 오래 살았던 공간에 대한 향수 섞인 감상이나, 기억과 얽힌 개인적인 소회는 그다지 큰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즉, 폐허가 만들어진 것은 그러한 몇 개의 이익집단이 서로 이성에 의한 판단으로 결탁했기 때문이다. 크게 집을 지어 장사를 해보려는 대기업이 원하는 땅은 원래 살고 있었던 자들이 인생을 갱신해보기 위해 배팅할 수 있는 밑천이었다.

그러나 직접적인 이해 관계와 동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이성의 논리를 축조하는 진정성이 받아들어졌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여기에는 재개발 대박을 맞은 소수의 서민을 질투하는 단순한 차원의 비난부터, 젠… 뭐라고 하는 외래어를 전가의 보도로 써먹는 사회학 이론가, 문화평론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은 다같이 목소리를 높여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의 ‘사람 - 여기서 사람은 단순한 생물학적 구분은 아니다 - 답지 못함’을 우려하거나, 모든 것은 신자유주의라는 악의 축 때문이라고 일갈하며 자기 만족적 분석을 끝낸다. 하지만...

그러므로 단순한 관찰자로서 도심을 재개발하는 풍경을 맞닥뜨리는 일이 여러가지 아전인수의 에너지에 사로잡힌 것은 당연했다. 그것은 단지 서울의 곳곳에 싱크홀처럼 나 있는 구멍의 풍경을 그저 이상하게만 바라보게 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다. 그 구멍은 조악한 재활용 방진막에 의해 가려져 있지만, 그 틈새로 보이는 부서진 콘크리트 덩어리의 밭이 상징하는 정서는 직접적이면서도 착잡한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그것은 자신이 발을 붙이고 살던 환경이나 시스템의 속살을 보는 일이면서도 동시에 내가 알지 못했던 타인, 그러나 우연에 의해 자기 자신이 될 수 있었던 보편적 타인의 내밀한 사적 공간의 안을 들여다 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2000년대를 관통하며 서울에서 미술을 배웠던 자들은 누구나 한번쯤 폐허에 관심을 둘 수 밖에 없었다. 미술이나 사진을 전공하기 위해 갖춰야 할 계급적 자산을 소유한 학생들은 (폐허를 소비하려는 욕망을 가진 부모를 가진 것과는 별개로) 아파트라는 커다란 공동주택이 가진 시각적 규칙 이외의 세계를 인식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학에 진학하여 자신이 살던 동네가 아닌 다른 동네를 경험하게 되고, 버스를 타고 시내를 누비는 상황에서 연립주택이 다닥 다닥 붙은 언덕을 구경하거나, 그 언덕이 곧 부서진 콘크리트 덩어리로 변모하는 과정을 목격하는 것은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마치 기억이라도 하고 있듯, 명징하게 느끼는 일종의 감정적 빙의 상태, 곧, 물신에 빠져들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여기서 다시 정지현에게로 돌아가보자. 그에게 있어서 폐허를 촬영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작가는 잠실 주변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자신의 개인적인 추억을 먼저 이야기한다. 유년에는 세상의 전부였을거라 짐작되는 잠실의 주공아파트 단지가 짧은 순간에 천지개벽 하듯이 변화하는 모습을 직접 경험했다는 것을 현재 진행하는 제 작업의 알리바이로 두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시리즈 <데몰리션 사이트, Demolition Site, 2013>가 단순히 폐허의 스펙터클에 대한 물신과 개인적인 기억-상념에서 출발하여 현대 미술적 속성을 획득하기 위해 설계한 방식은 무엇이었을까?

먼저 그의 작업 방식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그는 거대 단위의 재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 공간을 발견한다. 그 발견은 국가 단위의 계획이라거나 도시가 생성되고 소멸되는 커다란 논리를 조망한다기 보다는, 자신이 직접 아이레벨로 관찰할 수 있는 영역에서 시작된다. 자신이 머물던 동네, 자신이 다니던 길, 자신이 살았던 동네 등, 개인이 체험을 육화할 수 있는 부분으로부터 시각적 발견이 이루어진다. 그 발견은 즉, 왕성한 모더니즘의 환락과 중산층의 열망이 부딪히던 공간에서 사람이 빠져나간 공간에 관찰자로서 다시 개입하려는 최초의 준비이기도 하다.

발견이 끝나면, 그는 섭외를 시작한다. 여기서 섭외는 단순히 촬영을 원활히 하기위한 기술적 부분을 포함하지만, 그는 섭외를 위해 수시로 폐허를 들락거리며 정서적 결을 쌓아간다. 주로 건설 대기업의 직원부터 공사판의 노동자까지 만나며 그는 촬영이 가능한 곳을 좀 더 세심하게 다듬어 나가는 것인데, 그 과정은 마치 처음 새 동네로 이사를 갔을 때 낯설음과 익숙해지는 과정과 같다. 즉, 사람이 빠져나가고 없는 공간에 들어가서 관찰자로서 공동체의 흔적을 단순히 채집하기 보다는 한 인간으로서 공동체로 진입하기 위한 여러가지 준비를 진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낯선 폐허를 개인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폐허의 특정 부분에 붉은 색으로 칠을 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자연스럽게 실제로 사람들이 움직여 다녔던 발자취를 추적하는 기능을 갖게 된다. 모두 같은 모양으로 설계된 아파트가 각 호실마다 서로 다른 모양으로 주거의 주체에 따라 개인화되는 것처럼, 정지현은 자신이 선택한 방에 직접 제 흔적을 첨가한다. 붉은 색에서 직접적으로 연상되는 피나 생명은 매트한 페인트 재질에 의해 임시적으로 덧붙여지고, 그것은 실제로 삶을 영위했던 ‘원주민’의 것이라기 보다는, 가상의 공동체에 마지막으로 합류한 작가 개인이 자행하는 일종의 샤먼적 의식에 가깝다.

마지막으로 그는 철거 일정을 기다렸다가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다시 폐허의 바깥에 나와서 폐허를 조망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렌즈가 담을 수 있는 앵글을 찾는 행위임과 동시에, 임시적 주거자의 지위를 자의적으로 획득한 작가 개인이 흔적을 남겨두고 그곳을 (마치 ‘원주민’들이 그러했듯) 빠져나오는 것과 닮아있다. 그리고 자신이 칠해놓은 흔적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를 잡아서 담담하게, 어떤 의미화도 거부하려는 듯한 중립적인 사진을 찍고, 가장 보편적인 방식으로 출력해서 전시한다.

이러한 과정은 마치 폐허의 이름을 부르는 것과 같다. 각각의 폐허가 보편의 폐허로부터 추출될 수 있는 몇 개의 공허한 수식어들로부터 탈주하게끔 하기 위해, 작가는 폐허 자체로 작가 스스로에게 상징화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작가는 세계의 어느 도시에서든지 볼 수 있는 폐허의 보편적 의미를 좀 더 세심하게 관찰할 수 있는 것이다. 즉, 단순히 시각적인 결과물을 위해 재개발 사이트를 포착하는 것에 대한 윤리적 고민으로부터 출발하여, 공허함을 채우기 위한 장치를 활용해서 마치 늙어 죽어가는 반려동물의 시체가 부패하는 과정을 담담히 관찰하려는 정념을 정제하고 있는 셈이다.

소위, 장소 특정적 미술이 가진 어떤 일회성을 포착하려는 태도는 결국 그 장소가 일회적인 공간이라는 이유로 항상 공허한 정서를 내포하게 된다. 만들어 놓고 부서지는 과정 자체를 하나의 미술적 행위로 상정하는 것은 결국 그 공허함을 포착하기 위한, 그래서 개념만 오롯이 도드라지게 구현하는 데카당스의, 혹은 정신적 해탈의 일종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정지현의 사진이 만들어진 장소 특정적 상황을 사진으로 영원히 기록해 둔다고 할 지언정, 거짓 위로의 공허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폐허의 이름을 불러 제 옆에 눕혀두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일까?

이는 역으로 현대 도시의 생태가 가진 특성과도 비교된다. 부수고 다시 짓는 것은 상술했듯, 결국 자본의 문제로 회귀된다. 그러나 자본이 실제로 자본의 역할을 다 하던 시절의 건설업과 쇠락해가는 자본주의의 사선에서 링겔을 맞으며 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건설업은 다르다. 하지만 그러한 전체의 논리와는 무관한 상황을 설정하는 것이 정지현의 작업으로 보인다고 해도, 정지현의 작업에는 자연스럽게 현재의 도시에 대해 발언하고자 하는 욕망이 희미하게 깔려 있다.

그러나 과거의 건설업이 누렸던 축복의 일생을 개인적으로 갈음하는 데에는 효과적일런지는 몰라도, 그의 작업은 여전히 전체의 논리 앞에서 무력한 개인사의 기억같은 파편을 그러모으지는 못한다. 그리고 그것은 작가 개인이 극복해야 하는 장애물이라기 보다는 인정해야 하는 운명같은 것이다. 그러한 비가역성이 현대 도시의 생태가 무너지고 있는 가장 큰 이유라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정지현의 작업은 비로소 현실에 대해 발언해 나갈 수 있는 방향성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전체의 논리 자체가 붕괴되어버린 후에 관찰할 수 있는 것은 현재에 도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